[권력의 경영] 상대가 나에게 호의를 베풀 기회를 만들어라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영화 <천국의 문>은 할리우드 역사에 길이 남을 파산 사례다. 이 영화의 실패로 제작사인 유나이티드 아티스트(UA)는 문을 닫아야 했다.

 

<권력의 경영>이란 책에서 제프리 페퍼 교수는 반대 의견을 설득하는 감독의 전술을 자세히 소개한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 영화의 감독으로 선택된 마이클 치미노 감독은 프랑스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를 주연으로 선택했다. 그런데 위페르는 프랑스 억양이 강해서 서부 영화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게다가 인지도도 매우 낮아 티켓 파워도 기대하기 힘들다. 당연히 제작사 간부들은 강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UA임원들은 남자 주인공이 이미 정해진 마당에 이 문제를 둘러싼 논란으로 결정이 지연되면서 처음의 예산을 초과할지 모른다는 부담을 갖기 시작했다. 이 순간 치미노는 절묘한 설득 전략을 구사한다.

 

감독의 선택권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임원진이 내린 결정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한 번이라도 그녀를 만나 얘기해보는 성의 정도는 보여야 하지 않나요?

 

정면으로 공격한 것이 아니라 상대가 거부하기 어려운 '감독에 대한 신뢰'라는 프레임을 앞세운 것이다. 결국 두 임원이 위페르를 만나기 위해 파리 행 콩코드기에 올랐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임원들이 여배우를 판단하기 위해 대서양 너머로의 장거리 출장이란 다소 과한 행동에 나서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 순간부터 임원들은 비싼 돈과 시간을 들여 가는 출장인 만큼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부담을 갖기 시작한다. 동시에 위페르가 아니라고 한다면 결론은 간단하지만, 그에 뒤따르는 여러가지 부담이 생긴다. 새로운 여배우를 놓고 감독과 협의하는 일, 그에 따라 제작일정이 늘어지면서 증가할 예산, 감독의 결정을 뒤집는 것에 따른 부담 등....  반대로, 뭔가 새로운 장점을 찾아낼 수 있다면, 이 모든 번거로운 일이 없어진다.

 

정말이지, 그녀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밤이 깊어지고 와인이 한 병 두 병 비어가면서 그녀의 매력이 눈에 띄기 시작하더군요.”

바로 그때 스스로 납득할 만큼 교묘한 시각이 생기더군요. 누가 이 영화의 진정한 스타일까? 이 영화의 진정한 스타는 주연 배우가 아니라 바로 마이클 치미노 감독이다. 우리는 주연 배우들에게 베팅한 게 아니라 바로 치미노에게 베팅한 것 아닌가. 따라서 감독이 위페르를 원한다면 마땅히 지원해야 하지 않겠는가.”

 

천천히, 미묘하게 전개되므로 자각하기 어려운 이런 과정의 특징은 외부 압력이 거의 없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외부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고 오직 개인의 신념과 가치에 따라 판단했다고 스스로 믿게 되고, 그 만큼 이후의 과정에 훨씬 몰입하게 된다.

 

이 방법의 요체는 이런 것이다.

남에게 먼저 호의를 베풀게 함으로써 상대가 나에게 호감을 갖도록 하고, 이를 통해 사람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는 것은 상식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진짜 권력을 잘 다루는 고수는 종종 정반대로 한다. 내가 먼저 호의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나에게 먼저 호의를 베풀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상대의 훨씬 강한 몰입을 이끌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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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경영] 권력을 혐오하는 리더는 무능하다

과학 분야는 권력과 가장 관련이 적은 분야일 것이다. 그런데 연구실을 넘어서 사회로 나오는 순간 과학조차도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다음의 예를 보자.

 

19813월: 샌프란시스코의 어윈 메모리얼 혈액은행에서 RH-형 아기가 47세 기증자의 혈액을 수혈 받음

19817월: 의료 관계자들 다수, 에이즈가 성적 접촉뿐 아니라 혈액을 통해서도 전염될 수 있다고 결론

19819월: 수혈 받은 아이가 면역기능 장애 보임.

198112월: 질병통제예방센터(예방센터)의 전염병 연구자 돈 프랜시스는 에이즈 수혈 통해서도 확산 경고

198211월: 샌프란시스코 보건부 전염병통제국의 부국장 셀마 드리츠 박사는 수혈을 통해 에이즈가 전염된 최초의 사례를 문서로 보고.

이 기간 내내 혈액은행 관계자들은 일관되게 에이즈가 수혈을 통해 감염된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예방센터가 관심을 끌어서 자금을 더 모으기 위해 과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19833월: 예방센터가 제안했던 간염 항체 검사를 혈액은행들이 거부

19835월: 스탠포드 대학병원이 주요 의료기관 중 처음으로 혈액검사 시행 결정이에 대해 혈액은행 업계는 에이즈 문제에 민감한 환자들을 꾀어내려는 술수라고 비난

혈액은행 업계의 부도덕성을 비난하는 것으로 사태 평가를 마무리하면 가장 간단하다. 그런데 예방센터가 수혈을 통한 에이즈 확산 예방을 촉구한 이후로 수혈을 통해 에이즈에 감염된 미국인들은 대략 12,000명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12,000명의 감염을 막기 위해 과학자나 의학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을까?’ 이렇게 관점을 바꾸어 보면 평가는 전혀 달라진다.

과학자 및 전염병 연구자들은 진실은 승리한다는 순진한(현실적으로는 무기력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업계를 둘러싼 이해관계와 기득권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그에 맞서 싸우는 정치적인 의지와 능력이 없었다.

 

리더는 올바른 일이 무엇인지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올바른 일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비전이 없는 리더는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판단력이나 직관을 갖추지 못해 실패하고 만다. 리더가 올바른 일이 무엇인지 알지만 그것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 자신이 무능한 탓이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


제프리 페퍼는 <권력의 경영>에서 권력이란 아이디어와 의사결정을 현실로 옮기는 능력으로 정의하고 리더의 필수 덕목이라고 말한다.

보통 사람들은 권력을 멀리할수록 선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사악한 의도를 가지고 권력을 획득하고 휘두르는 사람의 폐해가 매우 크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약도 치사량을 넘기면 죽고, 자동차 사고로 매년 많은 사람이 죽는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약을 추방하자거나 자동차를 악이라고 비난하지는 않는다. 권력도 이와 같다. 권력의 리스크와 위험성을 이해하고 그 올바른 사용법을 교육하자. 이것이 페퍼 교수의 문제의식이다. 이런 이해와 교육의 부족으로 인해 말은 잘 하는 데 실행을 못하는 무능력한 리더가 양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권력을 둘러싼 정치 게임이 싫어서 조직을 작게 쪼개거나 아웃소싱하고, 조직을 떠나 개인적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조치를 통해 내부의 정치는 줄일 수 있겠지만, 외부의 다른 조직이나 사람에게 의존해서 일해야 하는 한 권력과 영향력을 둘러싼 정치의 문제를 내부에서 외부로 위치만 옮긴 것일 뿐,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마치 머리만 덤불 속에 쳐박고 내눈에 안보이니 사냥꾼이 자기를 못찾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꿩 얘기가 떠오른다.)

 

페퍼 교수가 권력을 혐오하는 생각의 뿌리를 성장과정의 학교 교육에서 찾는 부분은 흥미롭다.

 

1) 학교에서의 학습 성취도는 개인적 역량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한다. 남의 시험지를 베껴쓰는 경우가 아니라면, 옆의 친구가 공부를 못한다고 내 성적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에 나오면 다르다. 조직에서 개인이 어떤 성취를 하느냐는 그가 다른 사람들과 얼마나 잘 협력할 수 있는지에 의해 판가름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같은 프로젝트를 하는데 옆의 동료가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것이다.


2) 학습에서는 정답과 오답이 정해져 있고, 그 판단도 즉시 이루어진다. 그러나 사회에서 의사결정, 특히 복잡하고 큰 문제에 관한 의사결정일수록 오답과 정답으로 정확히 나누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게다가 의사결정의 결과를 확인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결과가 나오고 나서도 그 책임이 의사결정 자체에 있는지 실행 과정에서의 오류인지 명확하지 않고, 이를 둘러싼 의견대립이 거의 언제나 표출된다.

 

권력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그 획득과 행사 방법을 배울 필요를 느끼기 위해서는 먼저 의사결정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제프리 페퍼는 3가지 관점을 제안한다.


1) 의사결정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금연을 결심했다고 담배를 끊은 것이 아니다. 실행으로 이어져야 비로소 의사결정이 효과를 내기 시작한다.

2) 의사결정을 하는 순간에는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알 수 없다

의사결정의 질은 그 결과에 의해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큰 의사결정일수록 결과가 분명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확률이 높다. 그 시간 동안 진실은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은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3) 우리는 의사결정에 들이는 시간보다는 그 결과에 훨씬 더 긴 시간 노출되어 있다

의사결정 과정, 그리고 사후에 공과를 따지는 것보다, 의사결정의 결과를 개선하고 관리하는 데 훨씬 더 긴 시간을 들여야 한다


결과를 관리하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준 것이 혼다의 미국 진출이다.

일본에서 성공한 혼다가 미국에 처음 진출할 당시의 생각은 간단했다.


미국에서 무엇인가 팔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가능성을 생각했을 뿐, 손익분기점이나 마케팅 전략도 없었다.

처음 출시한 250cc, 300cc급의 대형 오토바이는 일본보다 훨씬 장거리를 빠르게 달려야 하는 미국의 실정에 맞지 않아 참담한 실패를 맛보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너무 소형이라 안 통할 것이라는 생각에 50cc짜리 슈퍼컵의 출시는 아예 고려도 하지 않았다. 단지 직원들의 업무용 근거리 이동 수단으로 들여다가 사용하던 이것을 본 백화점 관계자가 판매를 타진해 온 것이 계기가 되어 혼다의 50cc 오토바이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혼다의 성공은 의사결정의 덕이 아니라 그 이후의 과정을 관리하는 데서 나왔다. 혼다는 사업이 수렁에 빠졌을 때 의사결정의 공과를 따지는 대신 우연히 찾아온 작은 계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가능성을 현실로 옮겨내는 실행에 집중한 덕분에 성공한 것이다.

학교에서는 시험지를 내는 순간 모든 결과가 결정나고 말지만, 사회 활동에서는 의사결정 이후의 과정이 결과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의사결정뿐 아니라 그 이후의 과정을 통해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권력이다. 누가 영향력을 발휘하고 무엇이 그 기반이 되고 있는가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것을 나쁜 의도로 누군가 사용하도록 내버려 두면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위의 내용은 <권력의 경영(제프리 페퍼 지음)>에서 발췌, 재정리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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