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를 관리하는 마법의 열쇠, 상관관계

예를 들어 한 보험회사가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하자. 하나는 단일 고객에게 1,000억원짜리 생명보험을 판매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1억원짜리 보험을 불특정 다수에게 1,000개 판매하는 방안이다. 두 경우 모두 보장 기간이 같고, 매달 들어오는 보험료의 총 액수가 동일하다면 보험회사는 둘 중에 어떤 것을 선호할까? 고객이 한 명이면 고객 관리를 위한 많은 수의 직원이 필요 없기 때문에 비용 절감 효과가 상당할 것이다. 그리고 보험 사기라든지 민원, 법률 소송 등 골치 아픈 일이 많아야 한 건에 불과할 것이므로 회사 운영이 수월해지는 것은 틀림이 없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보험회사는 두 번째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왜 그럴까?

개인마다 보험금을 지급할 사고를 당할 확률이 1,000분의 1이라고 하자. 한 명의 고객에게 1,000억원짜리 보험을 판 보험회사가 1,000억원을 잃을 확률은 1/1,000이 된다. 만약 고객 2명이 500억원짜리 보험에 가입했다고 하자. 보험회사가 최대로 잃을 수 있는 금액은 이때도 역시 1,000억원이다. 그런데 1,000억원을 잃을 확률은 단일 고객일 때와 비교해서 어떻게 달라질까?

이 확률을 정확하게 계산하기 위해서는 두 고객 간의 상관관계를 알아야 한다. 상관관계란 한 고객의 사망과 다른 고객의 사망이 얼마만큼 연관되어 있느냐를 뜻하는 용어이다. 만약 두 고객이 변태적 천생 연분인 부부여서 한 명이 죽으면 다른 한 명이 따라 죽겠다는 서약을 하고 실제로 지킨다고 하자. 자살도 생명보험 가입 후 2년이 지나면 보험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터무니없는 가정은 아니다. 이런 조건에서는 두 명의 고객이나 단일 고객이나 보험회사가 1,000억원을 잃을 확률은 1/1,000로 똑같다.

이번에는 좀 현실적인 가정을 세워서 한 명이 죽는 것과 다른 한 명이 죽는 것은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하자. 이때 확률은 [1/1,000*1/1,000]이 되어 1백만 분의 1이 된다. 보험회사는 아무런 리스크 관리를 하지 않아도 보험 가입자를 1명에서 상관관계가 없는 2명으로 늘리는 것만으로도 1,000억원을 잃을 확률이 1/1,000에서 1/1,000,000로 현저히 줄어든다. 고객이 2명이 아니라 3명이 되면 1000억을 잃을 확률은 10억 분의 1로 급감하게 된다. 보장 기간이 20년이라고 한다면 총 7,300일이 된다. 그러니 10억분의 1의 발생 확률을 가진 사건이 7,300일 안에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는 것만큼 실현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처럼 상관관계가 없는 사건들의 확률은 합치면 합칠수록 큰 손실이 발생할 확률이 줄어들고, 작은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은 커진다. (이 현상을 일반화하여 수학적으로 증명한 것이 린드버그-펠러 정리Lindeberg-Feller central limit theorem다. 보험회사가 수학의 덕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관관계는 개인이 안정적인 자산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때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근로소득, 집(혹은 전세 보증금), 예금, 보험, 주식 등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자산 사이의 상관관계를 최대한 끊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자사주 매입이 미수 몰빵 투자와 같은 이유

직장인들이 많이 하는 자사주 매입을 예로 생각해보자. 대개 회사에서 자사주를 직원들에게 판매할 때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보다 약간 할인해준다. 본인이 다니는 회사가 사업적으로나 재무적으론 탄탄하다면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비상장 벤처 기업에 다니는 경우에 자사주 매입은 상장될 경우 대박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투자 관점에서 이 문제를 검토해보자. 내가 다니는 회사가 망하면 다른 직장을 찾기 전까지 나의 근로소득은 0이 된다. 그럼 우리 회사 주식의 가격은 어떻게 될까? 역시 0이다. 이처럼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은 자신의 소득 포트폴리오 구성 요소 간의 상관관계를 극도로 높이는 행위가 된다. 그러니 투자 관점에서 자사주 매입은 가장 위험한 미수 몰빵 투기가 되니 인생에서 하지 말아야 할 톱10 리스트에 든다고 보면 된다. 자칫 "벤츠를 타고 다니는 꿈에서 깨보니 벤치에 앉아있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곧 나올 임성준, 조셉 H. 리, 두 분의 <소수의 법칙:월가에서 온 두 젊은이의 금융이야기>의 원고에서 발췌, 가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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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나름 선진적인(?) 한국의 은행들

1997년 IMF 외환위기와 관련해서 알려지지 않은 속사정이 한가지 있다. 당시 우리나라는 경상수지가 외환위기 전부터 적자 상태였기 때문에 달러가 계속 유출되고 있었다. 다행히 세계경제가 호황기여서 -달러 환율도 낮았고, 이자도 별로 높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나라 기업과 금융기관은 부족한 달러를 외국에서 빌려왔다. 실제로 당시 기업의 재무제표를 보면 달러 부채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당시 외환위기 직전까지 우리나라 은행들은 달러를 빌리기 위해서 달러 표기 채권을 많이 발행하였다. 이러한 채권의 주요 구매자들은 해외 투자은행들이었는데, 그들은 혹시라도 한국의 은행들이 빌린 돈을 갚지 못할 가능성에 대비하고 싶어했다. 그들에게 구원의 천사가 되어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한국의 은행들이었다. 그들이 미심쩍어 하는 한국 은행들의 신용 리스크를 제거할 있는 보험을 곳이 바로 한국의 다른 은행들이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게 과정이 진행되었다.

 

1) A은행이 이자율 5% 발행한 달러표기 채권을 메릴린치가 구입한다.

2) 메릴린치는 B은행에게 채권의 이자율 5% 중에서 1% 떼어주는 조건으로 채권의 신용 리스크에 대한 보장 보험을 산다.

3) B은행은 앉아서 편안하게 1% 번다.

 

당시 한국의 은행들은 은행의 파산이란 외계인의 침공만큼이나 가능성이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니 보험 팔아서 버는 1% 수익은 그들에게는 공짜점심, 무위험 수익이나 다름없었다. 100만원의 1% 이자(1만원)라면 볼일 없겠지만, 1000억원의 1% 10억원으로 얘기가 달라진다. 공짜점심의 맛을 알게 된 우리나라 은행들은 너도나도 이 보험을 팔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느 시점에 가서는 A은행이 발행한 채권을 보증해주는 보험을 B은행이 팔고, B은행이 발행한 채권에 대한 보험을 A은행이 파는 식으로 빚쟁이들끼리 서로 서로 지급 보증을 서주는 돌려 막기 구조가 형성되었다. 그러니 하나가 죽으면 전체가 죽는 리스크를 자신도 모르게 짊어지게 것이다. 당시에 얼마나 보험을 많이 팔았으면 보험을 팔아 들어오는 수익이 은행의 주요 수입원 하나였다고 한다.

동남아의 외환위기는 이렇게 은행들이 안고 있던 달러 채권 보험이란 폭탄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다. 미국에서 2008년까지 서브프라임모기지 채권을 가지고 투자은행들이 파생상품을 만들고, 파생상품의 리스크에 대한 보험을 대량으로 팔았다가 망한 AIG 일이 바로 이런 종류의 일이었다.

그러니 우리나라 금융업이 제조업만큼 선진화 되어 있지 못하다고 지적 받고 있지만 당시의 은행 관계자들이 들으면 서운해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보험 폭탄에서만큼은 2008년에 미국에서 AIG보다 15년이나 앞서서 우리 은행들이 선진적으로 경험했으니 말이다. 달콤한 공짜 점심과 뒤의 배탈까지도.



** 곧 나올 임성준, 조셉 H. 리, 두 분의 <소수의 법칙:월가에서 온 두 젊은이의 금융이야기>의 원고에서 발췌, 가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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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니 교수를 영웅으로 만든 ‘소수의 법칙’

심리학자들의 유머감각

 

동전 던지기에서 앞면과 뒷면이 나올 확률은 이론적으로는 정확히 1/2이다. 그러나 서너 번의 동전 던지기에서는 앞면이 더 많이 나올 수도 있고 극단적으로는 뒷면만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무한히 반복한다면 이론적인 예측과 정확히 같은 비율에 수렴한다. 이것을 대수의 법칙(Law of Large numbers)이라고 하며 수학적으로 증명되었다.

그런데 심리학자들은 구름 속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찾아내고 싶어하는 인간의 인지적 편향을 비웃는 소수의 법칙(law of small numbers)이란 용어를 만들어냈다. 대수의 법칙에 빗댄 표현일 뿐, 정확한 법칙은 아니다.

심리학자들의 관련 연구가 여럿 있는데 대표적으로 알려진 것이 농구 선수를 상대로 한 것이다. 경기 중에 A라는 선수가 3점 슛을 연속으로 세 번이나 성공시켰다. 그러면 관람자뿐 아니라 전문가라는 경기 해설자들도 "A 선수 오늘 물올랐군요."라며 흥분한다. 그리고 A가 다음에도 상당히 높은 확률로 슛을 성공시킬 것으로 믿게 된다. 그래서 따지기 좋아하는 학자들이 데이터를 엄밀하게 뒤져봤다. 그랬더니 이전에 몇 번 3점 슛을 성공시켰던 사건과 다음 번의 추가 득점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유머 감각을 발휘해서 '소수의 법칙'이란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소수의 법칙에 의해 만들어진 영웅, 루비니 교수

 

소수의 법칙이 지배하는 대표적인 영역 중 하나가 주식 투자이다. 예를 들어 5일 단기 이동평균선이 가장 위에 있고, 그 밑으로 20일 이동평균선, 이어서 60일, 120일 장기 이동 평균선이 층을 이루는 주가 차트 형태를 흔히 정배열이라고 한다. 그래서 정배열 초기에 있는 주식을 매수하고 역배열은 절대 피하라는 것이 기술적 분석의 가장 기초적인 매매법이다. 과거 차트를 보면 오르는 주식은 다 정배열이라는 것이 그 논거이다. 주식 관련 벤처에서 간부로 1년 정도 일하면서 차트 분석의 대가라는 사람들을 만나보았지만, '봐라 이 급등주는 정배열 패턴 아니냐'는 식의 예시만 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 방식으로 돈을 벌 수 있다면 주식투자로 돈 잃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타당성을 엄밀하게 검증해보려면 최소한 거래소와 코스닥에 상장되어 있는 1,500여 종목을 대상으로 정배열을 이루는 순간 매수해서 이 패턴이 깨질 때 매도하는 것으로 시뮬레이션을 해서 평균적인 손익이 어떻게 되는지 정도는 알아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배열은 단지 종목 선택의 조건 중 하나일 뿐, 정작 투자 종목을 고르려면 패턴 말고도 다른 많은 것을 살펴야 한다.

벤처 근무할 때 기술적 분석의 고수로 평가 받는 사람들을 여러 번 만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그들은 패턴에서 뭔가의 신호를 포착한 다음에도 여러 가지 일을 추가로 했다. 회사 주식 관련 홍보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회사의 사정을 알아보거나, 뉴스나 여러 경로의 정보를 통해 비업무용 부동산을 팔았는지, 중국에 신규 진출한 사업의 성과는 어떤지, 혹은 외국인의 매집이 시작되었는지 등을 살피고 나서 살지 말지를 결정했다.

그러니 책만 액면 그대로 철썩 같이 믿는 개미들은 소수의 법칙의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다.

 

소수의 법칙이 대표적으로 힘을 발휘할 때가 1997년 IMF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핵폭탄 급 사건이 발생할 때이다. 벼락같이 들이닥친 위기 앞에서 사람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바쁘게 구원의 선지자들을 찾아 나선다. 어떤 사람이 이번 경제 위기를 대충 비슷하게라도 예견한 흔적을 발견하면 갑자기 모든 언론이 그를 향해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며 아인슈타인을 저 아래로 내려다볼 위대한 금융 천재로 등극시킨다. IMF 직후, 이것은 시작일 뿐이라며 대한민국 패망의 시나리오를 들이댔던 스티브 마빈, 2008년 의 위기를 맞힌 루비니 교수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스티브 마빈은 협잡꾼의 냄새가 다분하지만, 루비니 교수는 유명해지기 전에도 연구와 저술 활동을 열심히 한 유능한 경제학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문제는 루비니 교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구름 속에서 예수님을 찾고 싶어 하는 우리들의 인지적 편향에 있는 것이다.

루비니 교수는 2005년 3월 29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에 미국의 경제 위기에 관한 한편의 칼럼을 기고했다. " 천문학적 규모의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중국과 같은 나라의 중앙은행들이 미국 국채를 내다 팔고 다른 나라 국채를 사기 시작하면 세계 경제에 위기가 올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다 알다시피 2008년 금융위기는 미국 주택시장의 버블과 위험한 파생금융상품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 2005년의 루비니 예언이 적중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동쪽으로 가면 귀인을 만날 것"이라는 무당의 계시를 듣고 실제로 강릉을 갔는데 거기서 돈 많은 사업 파트너를 만났다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는 2006년에도 여러 매체에 경제 위기의 가능성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이번에는 그 원인이 더 많아졌다. 해외 중앙은행뿐 아니라 미국의 무역과 재정 적자, 보호무역주의, 지정학적 리스크, 파생상품, 이자율 상승, 주택 버블 붕괴, 경험 없는 헤지 펀드의 폭증 등이 메뉴에 추가되었다. 경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는 수많은 이유를 열거했다.

주택 버블의 조짐은 2007년부터 실물 데이터를 통해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으니 2006년까지가 유효한 예측의 시한이었다. 루비니 교수가 이처럼 여러 번 위기를 경고한 것을 보면 무엇인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예감을 한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가 소수의 법칙에 휘둘리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런 것이 아닐까?

1) 과거의 데이터에서 세상이 움직이는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2) 그 패턴의 진행을 추적하면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있다.

3) 패턴에 영향을 미치는 지금 내 손 안의 요소를 통제하면 미래를 통제할 수 있다. 또는 그 요소를 통제할 수 없다고 해도 미래를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다.

패턴을 알고 싶어하는 우리의 이런 관점에서 보면 루비니 교수의 예측과 "동쪽으로 가면 귀인을 만날 것"이라는 무당의 예언이 우리에게 미치는 효과는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려울 때마다 음모론이 유행하고, 누군가가 스타로 부각되지만 결국 세상은 자기 힘으로 헤쳐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냉정한 현실일 것이다.

그래도 이런 현실은 인정하자니 매우 부담스럽다. 누군가 구원의 영웅이 짠 하고 나타났으면 좋겠다. 아니면 로또 당첨의 행운이라도!!

* 소수의 법칙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카너먼이 만든 용어로 알고 있는데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 말콤 글래드웰이 말한 소수의 사용자로부터 유행이 발화된다는 의미의 소수의 법칙도 있는데 그것과는 좀 다른 얘기입니다.

** 이 글은 곧 나올 임성준, 조셉 H. 리, 두 분의 <소수의 법칙:월가에서 온 두 젊은이의 금융이야기>의 원고 일부를 발췌해서 가필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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