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기업은 어떻게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파타고니아 사례 2/2

이 글은 미국의 사회적 기업 파타고니아에 대한 소개 글의 두 번째입니다. 앞 글을 읽지 않으신 분들은 첫번째 글을 먼저 읽어야 맥락을 이해하시기 편합니다.

-----------------------------


파타고니아는 설립 후 한동안 공식적인 사회적 사명조차 없었다. 1980년대 중반 수익의 1퍼센트를 환경문제 해결에 기부하기로 하면서부터 파타고니아는 환경보호운동에 대한 헌신과 집중적인 노력을 회사의 존재 이유로 삼아 지속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파타고니아의 비즈니스 철학에서 나타난 이런 근본적인 변화는 카탈로그에서 여전히 작은 글씨로 표현되었다. 솔직히 글씨가 너무 작아, 카탈로그에 있는 토씨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고 샅샅이 읽는 가장 열정적인 더트배거와 환경보호주의자들을 제외하곤, 누구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파타고니아는 잠재 소비자들에게 자사의 사회사명을 소리 높여 선언하지 않았다. 초기 몇 번의 실패를 거치며 파타고니아는 사회 변화의 이념을 대중시장에 크게 어필할 수 있는 문화 표현으로 번역해 내는 방식을 터득했다.


1990년 초 옐로스톤에 늑대가 돌아오도록 도와주자는 제목의 에세이를 시작으로, 파타고니아는 훼손된 자연경관을 야생의 상태로 복원하기 위한 캠페인을 시작한 이래 20년 넘게 지속했다. 그 캠페인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처럼 틀에 얽매이지 않고 낭만적인 사진 에세이 형식으로 소비자들과 만났다. 1993년 파타고니아는 연어 문제를 새로운 사명으로 채택했고, 산란을 위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산란 여행을 방해하는 댐 건설을 저지하기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러한 일련의 초기 에세이 캠페인은 이후 20년간 파타고니아 정치의 토대가 된다. 파타고니아의 캠페인 대부분은 늑대, , 들소 같이 한때 미국 서부를 자유롭게 돌아다녔던 동물들의 이동경로를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파타고니아가 열정적으로 추진했던 또 다른 캠페인인 야생 그대로의 바다The Ocean as Wilderness”였다.


파타고니아가 야생에 관한 정치적 캠페인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시어도어 루즈벨트가 주창한 환경보호주의와 맥을 같이 했다. 파타고니아가 내세우는 환경 정치는 오듀본협회, 전국야생동물연합, 야생협회, 1960년대 데이비드 브라우어가 급진적인 조직으로 변화시키기 전인 초기의 시에라클럽과 같은 보수적인 환경보호단체들의 노선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기후변화, 지하수 오염과 고갈, 유해성 화학물질의 식탁 위협, 서구식 소비가 개발도상국의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 당대의 가장 중요한 환경 문제들이서자로 취급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마찬가지로, 생애주기 분석을 통해 자사 제품이 생태계에 미치는 충격 줄이기, 공급망 혁신, 닳고 헤질 때까지 오래 옷 입기와 재활용하기 등과 같은 파타고니아의 핵심적 환경 사명 역시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야생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산업이 야기하는 환경문제는 그다지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다는 말이다. 작은 글자로 쓰인 부분을 읽지 않는다면 파타고니아의 환경정치가 오직 야생보호에만 초점을 맞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인터뷰했던 대중시장의 파타고니아 팬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파타고니아가 정치권 전반에서 큰 인기가 있는 환경보호운동의 하나인 야생보호운동의 열렬한 지지자라고 생각했을 뿐, 파타고니아의 환경보호 정치가 산업화와 소비사회의 병폐에도 크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사실은 거의 몰랐다.

 

문화 혁신을 통해 파타고니아는 정교한 야생의 모험을 직접 경험하기를 열망하는 중산층 미국인들 사이에 그야말로 한 브랜드가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파타고니아의 연 매출이 크게 증가해서 2억 달러를 상회했으며, 풀뿌리 환경조직에 수천만 달러를 기부할 수 있는 재정적 자원도 풍부해졌다. 역설적인 점은 파타고니아의 대중시장 소비자들은 정작 이런 영향력 있는 환경보호 노력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파타고니아를 사랑하고 또한 파타고니아가 환경사명을 추진하는 데서 가장 큰 힘이 되어주었던 대중시장의 많은 소비자들의 환경이념은 파타고니아의 환경보호이념과 정면으로 대치되기도 한다.

 

사회적 기업의 사회변화 이념은 강력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소비자들은 사회적 기업이 전달하는 사회변화에 대한 문화적 표현이 다른 전통적 기업들이 홍보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이나 사회적 대의와 관련 있는 제품들보다 더 진실하고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마케팅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사회적 기업의 사회 변화 이념은 오히려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동료 운동가들이나 크게 호응할 노골적인 사명선언문 형식으로 이념을 홍보한다면, 정반대의 결과를 맞을지도 모른다. 사회적 기업이 겨냥하는 잠재 소비자들이 노골적인 정치적 주장에 등을 돌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문화적 캐즘이라고 부르는 장애물이다.

 

사회적 기업이 문화적 캐즘을 건너기 위해서는 반드시 버려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사회적 사명에 장기적으로 헌신한다면, 대중을 상대로 지속적으로 설득작업을 반복한다면 결국 언젠가는 성공할 거라는 생각이다. 이보다는 대중시장의 잠재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이념이 충전된 문화표현을 개발하는 데에 초점을 맞출 때 성공 가능성이 훨씬 높다.

대중시장 소비자들은 이념이 충전된 제품과 서비스를 매우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운동가들과는 달리 소비자들은 브랜드의 상징주의에 포함되어 있는 암묵적이고 위장된형태의 이념을 소비한다. 따라서 문화혁신은 소비자들과 같은 비운동가들에게 사회적 기업의 명분의 중요성을 일방적으로 납득시키고 설득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수요 기반의 접근법을 선택해야 한다. 사회적 기업은 대중시장의 표적 소비자 집단에서 발생하는 이념적 욕구에 초기부터 예민하게 반응해야 한다. 1980년대 말 중산층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세련된 야생의 모험이라는 새로운 이념에 대한 수요가 싹트기 시작했는데, 파타고니아는 자사의 환경보호 이념에서 적절한 소재를 선별적으로 골라 이런 수요에 대응하는 문화 표현을 성공적으로 개발했다.


사회적 기업 역시 운동 단체가 아니라 기업인 한 아무리 혁신적이고 대중적 지지를 받는 이념일지라도 이념을 노골적으로 선언하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이념을 문화 표현으로개종시켜야 한다. 사회변화 이념을 가장 설득력 있고 믿을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하는 문화표현의 소재는 하위문화와 사회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사회적 기업은 적절한 하위문화나 사회운동에 깊이 헌신해야 한다. 당연히 자사의 사회변화 이념을 분명하게 실천하는 하위문화나 사회운동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가장 설득력 있는 표현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고, 대중으로부터 사회적 기업이 추구하는 이념에 대한 믿을 수 있는 지지자라는 평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본 취나드는 파타고니아의 문화표현의 토대로 자신이 형성 초기부터 많은 도움을 주었던 더트백 하위문화를 선택했다. 지방의 작은 가게로 시작해 미국 2위의 아이스크림 브랜드가 된 벤앤제리의 창업자들도 귀농운동의 헌신적인 참여자였기 때문에 자신들의 문화표현에 그런 이념을 성공적으로 주입시킬 수 있었다.


하위문화와 사회운동은 참가자들의 생활방식과 정치적 활동의 세부적인 요소를 통해 사회변화 이념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더트배거들은 어떻게 산을 오르고 어떤 장비를 선택하는지를 통해, 원시 야생에 대한 높은 미학적 안목을 통해, 환경보호주의를 몸소 증명했듯이 말이다. 한편, 귀농운동 참여자들은 대안농법을 사용하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식재료를 재배하며, 생산자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하는 협동조합을 창설하고 지지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이념을 표현했다.

이념이 포함된 문화표현은 사회 변화 이념을 암묵적이면서도 극적으로 전달한다. 그리고 그러한 문화표현은 이념을 선언문 발표하듯이 노골적으로 제시하는 것보다 대중시장 소비자들에게 훨씬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파타고니아와 벤앤제리는 이념적인 문화표현을 적절하게 활용했고, 브랜드에 맞아떨어지게 수정했다. 문화적 캐즘이란 장애를 만난 사회적 기업은 대중시장 소비자들을 잠재적 운동가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해서는 절대로캐즘을 건널 수 없다. 오히려 자신들과 정체성 면에서 공통점을 가진 소비자로 생각해야 한다. 파타고니아를 보라. 이본 취나드가 카탈로그를 코스모폴리타니즘을 추구하는 야생모험가들의 삶을 낭만적으로 표현하는 도화지로 사용했을 때, 비로소 파타고니아가 도약할 수 있었고 문화적 캐즘을 건너지 않았는가.


이런 점에서는 벤앤제리도 마찬가지였다. 레이거니즘에 도전하는 지속가능한 착한비즈니스의 이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도발적인 신제품을 출시하고 창조적인 홍보 전략을 사용했을 때 획기적인 돌파구를 마련했다.


파타고니아와 벤앤제리는 자사의 사회변화 이념을 소비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는 문화표현을 만들어 낸 뒤에야 비약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그들은 그런 문화표현을 만들어 내고 나서야 비로소 공식적인 사회적 사명을 개발했다. 이것이 올바른 순서다. 이 순서를 뒤집는 것은 운동화 끈을 묶지 않고 트랙에 오르는 것이나 다름없다.

 

저작자 표시
신고

설정

트랙백

댓글

시장조사보다 히피문화와 사회운동 선언문이 시장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컬트가 되라>

읽어보면 좋은 책 2012.10.17 11:09

시장 조사 대신 히피의 문화를 체험하고 사회운동가들의 선언문을 탐독하라.”

 

사회운동을 촉구하는 듯한 이 구절이 마케팅 책의 한 주장이다. 왜 저자들은 이런 얘기를 할까?

흔히 스타벅스의 성공 원인을 커피가 아니라 커피의 향기를 판다.’ ‘문화적인 만남의 장소와 같은 코드로 분석하지만 저자들은 다르게 본다. 비슷한 시기에 스타벅스와 마찬가지로 저렴한 가격에 고급 커피와 사교공간을 제공하던 커피전문점은 무수히 많았다. 그러나 스타벅스처럼 성공한 곳은 없었다. 저자들은 스타벅스가 성공한 것은 고급스럽고 비싸지만 대중화하기 어려운 커피 문화를 대중이 수용할 수 있는 최적의 형태로 번안해서 제공하는 문화의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에서 찾는다. 그 사회적 배경으로는 전후 미국 경제의 성장으로 넓어진 중산층이 존재했다. 이렇게 보면 스타벅스의 정체 내지는 추락 역시 같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기업영농에 대한 광범위한 반대를 바탕으로 부상한 유기농 열풍, 슬로푸드운동의 흐름이야말로 스타벅스가 비슷한 패스트 팔로워 전략으로 입지를 넓힐 기회였다. 그러나 스타벅스는 커피와 더불어 팔 수 있는 것, 즉 제품 중심의 사고에 갇혀서 정크 푸드에 진출하면서 맥도날드와 경쟁함으로써 자신의 독특한 문화적 입지를 잃어버리고 싸구려 대중제품으로 전락했다. 사회경제적 배경을 깔고, 문화를 키워드로 하는 저자의 분석은 매우 독창적이고 설득력 있다. 그리고 market share가 아닌 mind share라는 개념도 신선했다.

 

저자는 문화 전략의 갈래를 다음과 같은 6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념적 대결 구도를 유발시키다 (벤앤제리, 퓨즈)

기업을 신화화 하다 (잭다니엘스, ESPN)

반동적 이념을 부활시키다 (잭다니엘스, 말보로)

문화자본 트리클다운 (스타벅스, 비타민워터, 팻타이어)

문화적 캐즘을 건너다(나이키, 스타벅스, 팻타이어)

문화적 주짓수 (벤앤제리, 퓨즈)

 

늘 제품 혁신을 고민하지만, 혁신 제품으로도 성공 여부를 장담하기 힘든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들이 제안하는 문화를 통한 새로운 브랜드 구축 전략은 매우 통찰력 있는 관점을 제공한다.


<<책의 내용 중 벤엔제리의 사례를 요약 소개한다.>>

- 벤엔 제리는 현재 유니레버에 인수되어 유니레버 안에서 2, 3위 브랜드가 되었다.

 

미국 고급 아이스크림 업계의 강자 벤 앤 제리의 사례는 책 속에 소개된 다른 사례에 비해서도 매우 독특하다..

벤과 제리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미국에서 유행했던대항문화의 보헤미안적인 이상을 토대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막차로 아이스크림 업계에 들어왔다. 게다가 1970년대 초반부터 많은 사람들이 보헤미안의 이상을 표방하며 시작했던 비즈니스는 거의 대부분이 파산했다. 소규모로 성공한 이들도 간혹 있었지만, 주목할 만큼 크게 성공한 비즈니스는 없었다. 그런데 벤 앤 제리는 그런 하위문화의 틀을 깨고 나와, 최고의 고급 아이스크림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초창기 벤 앤 제리는 버몬트 주 벌링턴과 인근 지역의 친환경 농산물 생산자들을 목표 소비자층으로 삼아 크게 성공했다. 벤 코헨과 제리 그린필드는 히피들이 시골에 둥지를 틀고 공동체를 만들어 귀농 이념이 싹텄던 1969, 롱아일랜드의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 중 벤은 대학에 진학했지만 도예를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어 중퇴한 다음, 얼마 지나지 않아 뉴욕 주 외곽의 하이랜드 공동체라는 실험학교에 공예 교사로 취직했다.

하이랜드 공동체는 전형적인 농촌 공동체로 교직원과 학생들이 먹거리를 직접 재배하고 농장에서 기른 소에서 우유를 얻었다. 3년 후 건축법 위반으로 공동체가 문을 닫자 벤은 당시 실업자였던 친구 제리를 불러 아이스크림 가게를 시작했다


그들은 상당한 규모의 대항문화 공동체가 있는 지방 대학도시들 중에서 버몬트 주 벌링턴을 선택했다. 그들은 12천 달러를 어렵게 마련하여 버려진 주유소를 빌려 아이스크림 가게를 시작했다.

가공되지 않은 간단하고 신선한 자연 식재료만 사용해 아이스크림을 만들었다. 그들은 볶은 곡물과 손으로 직접 부순 땅콩캬라멜 그리고 버몬트지역에서 생산되는 메이플 시럽같은 재료로 아이스크림의 향을 냈다. ‘벤 앤 제리 홈메이드라는 상호는 작고 친밀하고 전근대적인 느낌이었는데 꽤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저자들은 벤 앤 제리가 자사의 브랜드와 귀농운동을 이념적으로 일치시키고, 산업화된 거대 기업영농에 대한 반대세력으로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매우 광범위한 문화코드를 사용했다고 평가한다.


벤 앤 제리가 15주년이 되어 사업을 확대할 때 벤은 가장 강력한 마케팅 도구를 이념에서 찾았다. 벤 앤 제리를 레이거니즘의 비즈니스 이념과 정치에 대항하는 믿을 수 있는 도전자로 포지셔닝하자는 것이었다. 브랜딩 목표는 정해졌으니 이제는 그 방법을 결정해야 했다벤 앤 제리가 나아갈 길을 알려주는 첫 번째 길잡이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왔다. 1984년 벤앤제리는 자금이 필요했는데 귀농운동의 이상을 반영하여 지역의 농부와 그들의 가족 그리고 공동체 회원들에게 주식을 공개했다. 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최소 투자액을 125달러로 책정했다. 1800 가구가 벤 앤 제리의 주식을 매입했는데, 버몬트 주 전체 주민 100명당 한 명꼴로 벤앤제리의 주식을 매입한 셈이다. 이처럼 금융가의 상식을 뛰어넘는 창조적인 주식공개로 월가를 단숨에 전복시키자, 벤앤 제리는 버몬트 주를 비롯하여 인근 여러 주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두 번째는 찐빵인형은 무엇이 두려운 걸까?” 켐페인이었다.

19843월 벤은 하겐다즈의 모기업인 필스버리 컴퍼니가 식품 소매상들에게, 만일 벤 앤 제리 아이스크림을 계속 판매한다면 거래를 끊겠다고 협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하겐다즈의 아이스크림 시장 점유율이 70퍼센트가 넘었기 때문에 소매점들도 굴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법적 투쟁은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데다, 소송에 소요되는 막대한 시간과 돈을 감당하기도 힘들었다.

이 문제에 대해 벤은 필스버리는 레이거니즘의 비즈니스 화신이자 약탈자이고, 벤엔제리는 귀농운동의 원칙에 입각한 대안적 중소기업이란 대결 구도에 불을 붙일 수 있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 수단으로 찐빵인형은 대체 무엇이 두려운 걸까요?”라는 캠페인이 탄생했다. 이것은 필스버리의 유명한 마스코트, ‘도우보이Doughboy’를 비꼬는 말이었다. 벤 앤 제리는 그 캠페인 문구를 언론홍보자료로 대대적으로 배포했고, “3,948,100,100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찐빵인형과 맞붙은 작은 벤앤제리를 알리는 유인물을 제작했다. 유인물 뒷면에는 개개인의 직접 행동강령을 포함시켰다. ‘연방통상위원회와 필스버리 이사회 회장에게 보내는 항의 편지 보내기, 버거킹 등 필스버리의 다양한 하위브랜드에 대한 불매운동을 촉구하는 등의 행동지침이었다. 그리고 찐빵인형 핫라인을 열어 소비자들과 소통했다.

벤 앤 제리는 찐빵인형캠페인을 통해 귀농운동의 인도적 이상으로 레이거니즘에 대항하는 유쾌한 히피 약자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이 캠페인에 힘입어 벤 앤 제리 아이스크림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해서, 1985년 매출이 250퍼센트나 성장했다. 이듬해인 1986년에도 매출이 두 배나 증가했다.

저작자 표시
신고

설정

트랙백

댓글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