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인터넷 글과 책을 쓰는 것의 차이점

출판 이야기 2011.04.25 17:16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많아지면서 책을 쓰려는 사람도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특히 강의나 블로그, 페이스북 등을 통해 독자들의 긍정적 피드백을 많이 받을수록
책을 쓰고 싶은 욕구는 커지고 잘 쓸 수 있다는 자신감도 높아지게 마련입니다.

즉, 책을 내면 잘 팔리고 인정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저는 이것이 책을 둘러싼 환경이 디지털화하면서 가장 크게 변하는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전자책, 앱스토어가 확대되면서 책을 적은 비용으로 쉽게 출판할 수 있게 되면서
저자의 숫자는 시간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회를 통과해서 만족할만한 성과, 즉 많이 팔든, 아니면 마니아층으로부터
내용의 질에 대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통과해야 할 관문이 여럿 있습니다.
그 중에서 첫번째 관문은 매체간의 특성 차이를 잘 이해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대표적으로는 강의와 블로그 등 온라인 글쓰기와 책의 차이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강의는 멀티미디어를 이용한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소리, 몸짓, 사진, 동영상 등을 모두 동원하여 청중과 교감합니다.
잠깐의 침묵, 바뀌는 슬라이드 화면만으로도 장면을 전환하고 분위기를 바꿀 수 있습니다.
그에 반해 책은 텍스트 중심(정지 이미지를 포함할 수 있다)의 커뮤니케이션을 합니다.
이 차이 때문에 현장에서 청중의 열광적 반응을 받았던 강연 내용도 책으로 엮다보면
분량이 너무 작아지거나, 강의 때의 감동은 온데간데 없어지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우리가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볼 때 음향을 끄고 화면과 자막에만 의지해서 보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아마 영화가 주는 감동의 반의반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차례의 강연을 통해 주제에 대해 잠재 독자에게 검증된 것이라고 해도
책은 독자에게 전달할 메시지를 구성하고 소통하는 전략이 달라야 합니다.


블로그는 강연과는 다른 특성을 보이지만 역시 그대로 책으로 엮기는 어렵습니다.
웹에서 읽기의 특성은 휘익 훑어가며 필요한 부분만 골라 읽는 "skip & scanning"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저는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지고 있는 책의 강점은 논리적 일관성과 깊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쉬운듯 보이는 우화나 가벼운 책들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그 이야기의 뒤에는 독자를 설득(또는 소통)하기 위한 치밀한 논리적 장치가 깔려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의 생각과 마인드를 흔들어서 확장하고 새로운 사고를 자극하는 힘을 얻습니다.

독자로서의 개인적 경험을 보거나 출판을 해서 독자들의 반응을 얻었던 책들은 예외없이 많은 정보와 지식을 주는 것보다는 사물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자극한 책입니다.

강연이나 블로그를 통해 쌓은 지식을 책으로 엮어낼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참고가 될 책 40~50권쯤을 읽는 것"이라는 한 저자분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몇년 전 셰익스피어를 번역하시는 고 이윤기 선생을 뵈었을 때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셰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고 한 말이 단순한 수사가 아님을 알겠다.
그의 글을 보면 고대 그리스부터 당대에 이르기까지 축적된 유럽의 도서관의
모든 지식을 섭렵하지 않았으면 나올 수 없는 표현들이 곳곳에 있다.
그렇게 수세기에 걸친 지식의 보고를 간직한 인물이니 그 가치에서 능히 인도에 견줄만하지 않겠는가?"


TV 시정이나 동영상 시청 등과 비교할 때 책을 읽는 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일 중에 훨씬 많은 참여와 노력을 요하는 노동입니다. 따라서 독자가 강연을 듣거나 블로그 글을 읽을 때에 비해
훨씬 긴 시간을 들여 책을 읽는 수고를 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할 수준까지 내용의  깊이를 확보하고 그 내공이 책에 자연스럽게 묻어날 때 가장 멋진 책을 쓰는 저자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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