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트라우마보다 사소한 문제가 우리를 더 불행하게 만든다(행복의 신화)

또 다른 행복의 신화와 진실

"커다란 트라우마보다 일상적 잡일이 우리를 더 불행하게 만든다"

 

육아라는 힘든 과제를 좀 더 긍정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다소 직관에 반하는 전략이 하나 있다. 바로 시간을 내서 육아에서 경험하는 큰 어려움과 작은 어려움을 한 번 구분해보는 것이다. 종이를 반으로 접어 양쪽에 각각 큰 것일상의 작은 것들의 목록을 나열해 보아도 좋다.


얼마 전에 어느 가족이 내게 자신들이 느끼는 고통을 자세하게 설명해준 적이 있다. 사라와 제임스의 둘째 아들은 가벼운 아스퍼거 증후군과 주의력 결핍 장애를 갖고 있다. 아들은 학교에서 어떤 과목은 탁월하게 잘 하지만 다른 과목들에서는 고전한다. 아들에게는 친한 친구가 한 명 있긴 하지만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는 거의 교류하지 않는다

큰 아들은 심리적으로 잘 적응한 것 같으나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놀 때가 많아서 밤마다 숙제 문제로 싸워야 한다. 예상대로 이 가족의 큰 걱정 목록은 작은 아들의 정신 건강 문제가 차지했다

그러나 작은 걱정거리에는 큰 아들의 숙제 전쟁이 있었다. 작은 걱정으로 열거된 것들 중에는 매일 경험하는 다양한 골칫거리와 스트레스, 상처들이 포함되었다. 예컨대 몇 주 전에는 사라가 작은 아들을 데리고 아들 친구, 친구의 엄마와 함께 만나 시간을 보내려고 했었는데 별 이유 없이 약속이 취소되었다. 사라는 아이의 엄마가 자기 아들이 우리 아들과 어울리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약속을 취소했다고 확신했다. 그러고 있는데 드라이어가 고장 났다. 별거 아닌 고장이었지만 엄청난 불편과 일거리를 만들어냈다. 마지막으로 큰 아들이 얼마 전에 생일 선물로 사준 휴대전화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다함께 몇 시간 동안 전화기를 찾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많은 사람들이 큰 일이 작은 일보다 더 크게, 더 오래 괴로움을 줄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연구 결과를 보면 이것은 또다른 행복의 신화이며 그 반대가 진실이다. 아이들 때문에 매일 겪는 허드렛일과 작은 행복이 인생의 주요 사건들보다 우리의 웰빙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큰 재앙보다 소소한 짜증이 더 나쁘다는, 이 직관에 반하는 아이디어는 그 이유를 생각해보기 전에는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을 것이다.


왜 그럴까?


몇 년 전 내(소냐 류보머스키)가 아직 결혼하기 전 혼자 살 때 하루에 두 가지 나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항공사에서 전화가 왔는데 내가 오래전에 예약해 두었던 장거리 항공권 창가 좌석이 실수로 다른 사람에게 팔렸다고 했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고속도로에서 내 차가 완파(‘아코디언처럼 찌그러졌다)되었다. 사고는 내 탓이 아니었고 나는 멀쩡했다. 사고를 겪은 나는 말도 안될 만큼 침착하고 냉정한 반응을 보였다. 도움을 청하고, 보험회사와 통화를 했으며, 다음날 쓸 차를 렌트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이것이 긴급 상황이라는 것과 내가 침착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또한 이성적으로 사고하여 모든 힘과 기지를 짜내야 할 때라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하지만 항공사에서 걸려온 전화에 대한 나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나는 항공사의 실수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며칠 뒤에 렌트카를 운전하고 다니면서도 그 일을 생각하며 씩씩거릴 정도였다.


우리가 중대한 부정적 사건을 경험할 때는(자동차 사고, 정리해고, 자녀의 정학 처분 등) 최선을 다해 최대한 빠르게 위기에 대처하고 견디도록 강한 동기부여가 된다. 우리는 친구들로부터 정서적 위안을 얻고, 고용주로부터 조언과 직업훈련을 얻어내며, 상담사나 의사로부터 다른 소견은 없는지 듣고, 책이나 웹사이트에서 정보를 찾는다. 그리고 발생한 일을 받아들이기 위해 인지적 작업’을 엄청나게 수행한다. 그 재앙의 긍정적 측면을 찾고 납득하고 합리화하한다. 나 역시 자동차 사고가 난 지 채 몇 분도 되지 않아 가장 친한 친구와 불행 중 다행이라며 위로의 말을 주고받다가 사고의 좋은 점까지 찾아냈다. 이제 보험료를 가지고 내가 항상 원했던 컨버터블 자동차를 살 수 있으니 말이다.


반면에 작은 실망이나 짜증을 겪은 뒤에는 이런 대처 노력이 생기지 않는다. 나는 해외에서 형편없는 월급을 받으며 일했을 항공사 직원이, 그날 일이 많아서 인간적 실수를 한 것이라고 납득해보려는 노력은 기울이지 않았다. 또 그 상황을 처리하기 위해 다른 이들에게 정보나 조언을 구하지도 않았다. 그건 과잉노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작은 불운에 대해서는 사회적 지지를 구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작은 일에 대해서는 다른 이들이 우리가 기울이는 관심의 반만큼도 관심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지나간 일에 대해 우리가 너무 오래 한탄을 늘어놓는다면 따분해 할 것이다). 또 연구 결과들을 보더라도 작은 문제를 털어놓는 경우 다른 사람들은 그 일이 별 것 아닌 양 얘기함으로써 우리를 응원해주려고 한다(“비행기에서 찰리가 그렇게 짜증을 부렸다니 속상했겠네. 그렇지만 여행에서는 그것보다 더 안 좋은 일도 얼마든지 생기잖아.”). 게다가 우리가 그렇게까지 기분 상해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기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기분이 더 나빠진다.


요컨대 심각한 문제의 경우 우리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재평가하려 애쓰고 잘 대처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며, 주변 사람들도 정서적으로 큰 응원을 보내준다. 하지만 작은 문제의 경우에는 이런 과정이 생략되는 까닭에 역설적으로 우리는 큰 문제보다 작은 문제에서 더 오래 고통 받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작은 문제들은 우리가 그것을 작다고 부르기 때문에 더 상처가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예컨대 사람들은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준 사람을 일상에서 자주 작은 상처를 준 사람보다 더 싫어할 거라고 짐작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라는 것을 보여준 일련의 연구도 있다.


아이들과 관련해서 종이 왼편에 적어놓은 작은 골칫거리들을 한 번 생각해보자. 거기에는 딸 아이의 컴퓨터 사용 때문에 짜증이 쌓이는 것, 어젯밤에 방바닥에 늘어놓은 옷가지들 때문에 소리를 질렀던 일, 오늘 아침에 아이가 귀가 아프다고 해서 걱정 되었던 일, 당신과 배우자 모두 아침 일찍 회의가 있어서 아침에 아이를 봐줄 사람을 구해야 했던 일 등이 씌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작아 보이는 문제들에 접근할 때도 노력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 도움을 구하든, 식구들과 타협을 하든, 사건을 좀 더 긍정적으로 재조명하든, 나가서 바람을 쐬고 재충전을 하든, 명상을 하든, 어떤 식으로든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육아와 관련한 작은 불운들에 좀 더 집중하기로 결심한다면 더 빨리 그 일로부터 회복하고 행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을 준비할 활력과 체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이 내용은 <행복의 신화(소냐 류보머스키 지음, 2013년 3월 출간 예정)>에서 발췌 재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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