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기업은 어떻게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파타고니아 사례 1/2

2012.12.17 20:03

비즈니스를 통해 사회문제환경문제를 해결하려는 사회적 기업가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지만, 내걸고 있는

사회적으로 좋은 이념에 비해 기업으로서 성장엔진을 제대로 가동시키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 문제에 대해 사회구조를 기반으로 문화전략이란 관점에서 마케팅에 접근하는 독특한 책 <컬트라 되라>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어서 2회에 걸쳐 요약, 발췌해서 소개한다. 

  

사회적 기업은 초기에 그들의 이념에 동조하는 동료 운동가들(경영학적으로 표현하면 얼리 어댑터)을 기반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문제는 특정 사안에 헌신하는 운동가 공동체의 규모가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기에는 턱없이 작다는 점이다. 게다가 선언적이고, 직설적이며, 훈계조의 방식으로 사회변화 이념을 전달하는 것은 대중을 끌어들이기보다는 사회적 기업을 시장에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이런 접근법은 사회적 기업이 자신들의 이상에 아직 동조하지 않는 소비자들을 끌어들이지 못하는 장벽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운동가들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는 사회적 비즈니스를 대중시장의 소비자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브랜드로 개종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분명히 사회적, 환경적 변화를 촉진한다는 점은 사회적 기업의 가장 큰 자산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오로지 영리 추구에만 집중하는 상업적 경쟁자들에 비해 훨씬 돋보일 수 있는 요소가 된다. 그러나 사회적 기업들이 대중적으로 기반을 넓히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전략은 사회공헌 기업을 다른 전통적인 사업과 구분시켜주는 바로 그 특징을 무시한다.

사회적 기업에 관심을 둔 유명한 경영자나 컨설턴트들은 대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저렴하다, 더 유용하다, 더 편리하다, 더 믿을 수 있다와 같이 일반 기업에서 입증된(?) 제품과 서비스의 승리 공식을 적용하라고 권한다단순하면서도, 매력적인 대안을 제공하여 업계의 기존 상업적 경쟁자들에게 도전장을 내밀라는 것이다.

말은 쉽다. 특정 브랜드가 더 좋은 쥐덫을 개발함으로써 명성을 획득하는 것이 모든 비즈니스에 있어 환영할 만한 목표겠지만, 그것은 사회적 기업이 직면한 특수한 전략적 기회와 도전을 무시하는 일반적인 비즈니스 처방에 불과하다.


사회적 기업의 비즈니스 접근법은 독특하다. 그들은 소비자들이 구매 행위를 통해 그들이 옹호하는 사회변화 이념에 동화되기를 희망한다. 브랜딩이 잘 되어 있다면, 사회적 기업은 전통적인 상업적 접근법으로 구성된 브랜드보다 대중시장 소비자들로부터 훨씬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 반대로 더 좋은 쥐덫 전략을 추구하라는 충고를 받아들이는 사회적 기업은 본래의 이념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고,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가장 소중한 자산을 뒷전으로 밀어내게 된다. 그리고 강력한 시장 지배력과 우월한 자원을 가지고 있는 일반 기업과 경쟁하기에는 역부족이라 시장에서 성공하기도 어렵다. 


요체는 사회변화 이념을, 대중시장에 의미 있는 가치를 전달하는 브랜드로 변화시키는 문화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아웃도어브랜드인 파타고니아가 대표적인 성공 사례를 제공한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적 기업 중 하나인 파타고니아는1980년대 말부터 문화혁신을 통해 대중시장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광범위한 시장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파타고니아의 핵심이념은 환경운동이다. 파타고니아의 기업사명문에는 파타고니아가 환경 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실행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파타고니아는 유기농 면티셔츠와 플라스틱 병을 재활용하여 만든 플리스 재킷 같이 지속 가능한 섬유를 개발했으며 회사의 수익을 수많은 환경단체에 기부한다. 파타고니아가 지원하는 환경단체 중 상당수는 미국의 정치적 지형에서 보면 극좌파로 분류되는 단체들이다.

이처럼 자사의 환경사명을 적극적이고 명백하게 공언했기 때문에 파타고니아의 유일한 고객기반이 진보성향의 환경운동가들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1980년대 말부터 파타고니아는 환경운동에 특별히 참여하지 않는 대중시장 소비자들에게도 커다란 호응을 얻기 시작했다. 필자들은 파타고니아의 사례를 연구하다가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파타고니아의 단골 중 공화당원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공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대부분의 사회적 기업들처럼 환경사명을 직접적이고 선언적인 방식으로 호소하는 대신, 파타고니아는 세련된 모험으로 가득한 신화적 세상을 내세웠다. 이 개념은 정치적인 성향을 초월하여 미국의 중산층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대중시장을 겨냥한 파타고니아의 브랜딩 전략은 설립자인 이본 취나드가 그 탄생에도 일조했던 더트백(dirtbag, 환경미화원, 쓰레기수거자라는 뜻옮긴이) 하위문화에서 소재를 가져왔다. 파타고니아를 설립하기 훨씬 전에 이본 취나드는 미국에서 꽤 유명한 산악등반가였으며 환경운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환경을 생각하는 더트백 하위문화의 선구자이자 권위 있는 지도자였다.


취나드는 1973년 첫 번째 회사 카탈로그를 제작했다. 가로 약 91센티미터 세로 약 81센티미터의 한 장짜리 카탈로그로, 지도처럼 접을 수 있었다. 고기능성 장비에 대한 독특한 설명 중간 중간 취나드는 자신의 등산 이념에 대해 설교를 풀어놓았다. 취나드의 등산이념을 표현하는 적당한 말은 클린이다. 보호장비로 너트와 러너만 가지고 등반하는 것이 바로 클린등반’을 옹호했. 바위에 박을 것도 빼낼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후에 제작한 일련의 카탈로그에서 취나드는 고객이자 독자들에게 자신이 올바른 야생의 모험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주제를 지속적으로 설파하고 그들의 행동을 촉구한다. 기술에서부터 장비, 복장, 미학적 관점에 이르기까지 영역을 가리지 않았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이념을 행동으로 직접 실천했고, 언제나 헤밍웨이 같은 모험가적인 낭만을 물씬 풍겼다. “그는 낚시를 갈 때마다 반드시 그곳 하천의 물을 그대로 떠 마시는 사람이었다. 세균이 아무리 많아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죽을때까지 자연과 함께 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적응해야 했다. 아픈 적도 많았지만, 한 번 앓을 때마다 나는 더 강해졌고 그러다 보니 아픈 빈도도 차츰 줄어들었다.”


취나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참가자들이 더트백 하위문화라고 부르는 한 공동체에서 윤리적 권위의 상징이 되었다. 취나드는 생의 모험에 대한 공격적일 만큼 마초적인 견해를, 자연에 대한 심오하고 심미적인 감상과 성공적으로 결합시켰다. 이 하위문화에서 폭넓은 존경을 받는리더로서 취나드가 초기에 기울인 이념적 노력은 훗날 그에게 커다란 도움이 된다. 그가 새로운 아웃도어 의류회사를 설립했을 때, 공동체 이념을 회사의 문화적 핵심가치로 발전시키는 것과 관련하여 확실한 신뢰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더트백 하위문화는 취나드가 등반가로 전성기를 누리던 1960년대와 1970년대 미국의 대중시장에서는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그의 이념이 싹을 틔울 토양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파타고니아의 획기적인 돌파구는 미국사회에서 발생한 두가지 교차적인 변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나는 레이건의 등장을 계기로 한 프런티어 신화의 부활이었고, 다른 하나는 세련된 소비에 대한 욕구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던 새로운 거대한 인구집단의 등장이었다.  


80년대 중산층 미국인들은 적자생존의 다윈주의적인 새로운 노동시장과 정면 승부를 펼쳐야 했다. 레이건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거대한 관료조직과 대기업 그리고 전문직과 대학 강단을 차지한 미국의 중산층이 나라를 좀먹는다고 주장했다. 중산층은 공공의 적이 되어 비열한 여피족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형국이 된 것이다. 

레이건이 경제적인 성공을 위해 필요한 기질과 거친 황야를 주름잡던 총잡이들의 세계정복 정신을 동일시하면서 프런티어 신화를 부활시킨 것은 중산층에게 문화적으로 직격탄을 날렸다. 중산층은 자신들이 결코 나약한 관료주의 여피가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라는 압박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소비에 대한 미국인들의 규범이 급격하게 변했다. 다시 말해, 미국인들은 과거 고가품을 구입하며 만족감을 느끼던 데서 정교한 문화적 경험을 구매하는 세대로 교체가 이루어진 것이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학졸업자 부모를 둔 대규모 인구집단이 마침내 성인이 되었다. 이 문화자본집단에게는 세련되고 창조적인 생활방식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전통적인 아메리칸 드림의 물질적인 이상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컸다.


이처럼 중산층 소비자들은 동시에 두 가지 방향으로 이끌렸다. 하나는 야생의 모험이었고, 다른 하나는 문화적 교양을 표현하는 새로운 방식이었다. 소비를 조장하는 이 두 가지 힘은 서로 모순적인 것이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스노모빌을 타거나 캐나다에서 엘크 사냥을 하는 것은 야생의 모험을 보여주는 뛰어난 표현이지만, 문화적 교양을 표현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반면, 인디 영화나 부티크 와인의 마니아가 되는 것은 그 사람의 독특한 문화적 취향을 표현해주기는 했지만, 동시에 비활동적인 도시 샌님이라고 광고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따라서 이런 문화적 퍼즐을 해결하는, 다시 말해 문화적 소양과 야생의 모험을 결합시키는 일에서 파타고니아는 매우 유리한 입장이었다. 파타고니아는 야생 모험에 참여하기 위한 일종의 매뉴얼을 정교한 코스모폴리타니즘적인 형태로 제공할 수 있는 위치를 선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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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취나드와 그의 아내인 멜린다는 기능성 아웃도어 브랜드를 창업했다. 파타고니아였다.

수년 동안 파타고니아의 주요 브랜딩 도구는 대형 카탈로그였는데, 제품에 대한 설명 사이사이에 이야기와 에세이 그리고 사진보도 등을 추가한 잡지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이를 통해 파타고니아가 이룬 문화혁신의 핵심은 극한모험을 낭만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처음부터 파타고니아는 현장 보고서를 발행했다. 아슬아슬한 야생모험의 위험과 스릴에 관한 직접적인 체험담이었다. ‘여행가와 모험가들이 들려주는 때 묻지 않은 원시자연의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즐길 수 있도록해준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천국에도 지옥이 있다

클로에 랜시어

나는 24시간 산악자전거 경주에 참가하여 9시간째 달리고 있었다. 해가 지고 밤이 내려앉을 무렵부터 갑자기 비가 쏟아졌고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으며 온 몸이 아팠지만 나는 속도를 늦출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싱글트랙은 그야말로 나무뿌리와 바위와 진창이 곳곳에 있어 절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새벽 3시쯤에는 숲이 우거진 곳에 안개가 내려앉았고 앞이 거의 보이지 않았으며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고독감이 짙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체온이 더욱 떨어졌고 이러다 저체온증에 걸릴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추위와 어둠을 이기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페달을 더욱 열심히 밟는 것뿐이었다.

동이 틀 무렵 전이지역을 지나는데 이곳저곳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 목소리들은 마치 아침잠을 깨우는 알람시계처럼 이제는 꿈에서 깨어나 눈앞의 현실에 직면하라고 나를 일깨웠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선두였다. 내가 1등에 그토록 집착하는 사람인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 산악자전거를 탈 때면 나는 오직 한 사람과 마주한다. 바로 나 자신이다.”

 

사진 에세이가 이어진 뒤 카탈로그는 에필로그로 마침표를 찍는다. 에필로그는 더글러스 피콕Peacock이 작성한 현장 보고서다. 피콕은 자칭 진짜더트배거dirtbagger10년 동안 야전식을 먹으며 회색곰을 찾아 야생을 누볐다. 그는 보르도와인과 푸아그라도 좋아한다는 코스모폴리탄이기도 하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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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조사보다 히피문화와 사회운동 선언문이 시장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컬트가 되라>

2012.10.17 11:09

시장 조사 대신 히피의 문화를 체험하고 사회운동가들의 선언문을 탐독하라.”

 

사회운동을 촉구하는 듯한 이 구절이 마케팅 책의 한 주장이다. 왜 저자들은 이런 얘기를 할까?

흔히 스타벅스의 성공 원인을 커피가 아니라 커피의 향기를 판다.’ ‘문화적인 만남의 장소와 같은 코드로 분석하지만 저자들은 다르게 본다. 비슷한 시기에 스타벅스와 마찬가지로 저렴한 가격에 고급 커피와 사교공간을 제공하던 커피전문점은 무수히 많았다. 그러나 스타벅스처럼 성공한 곳은 없었다. 저자들은 스타벅스가 성공한 것은 고급스럽고 비싸지만 대중화하기 어려운 커피 문화를 대중이 수용할 수 있는 최적의 형태로 번안해서 제공하는 문화의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에서 찾는다. 그 사회적 배경으로는 전후 미국 경제의 성장으로 넓어진 중산층이 존재했다. 이렇게 보면 스타벅스의 정체 내지는 추락 역시 같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기업영농에 대한 광범위한 반대를 바탕으로 부상한 유기농 열풍, 슬로푸드운동의 흐름이야말로 스타벅스가 비슷한 패스트 팔로워 전략으로 입지를 넓힐 기회였다. 그러나 스타벅스는 커피와 더불어 팔 수 있는 것, 즉 제품 중심의 사고에 갇혀서 정크 푸드에 진출하면서 맥도날드와 경쟁함으로써 자신의 독특한 문화적 입지를 잃어버리고 싸구려 대중제품으로 전락했다. 사회경제적 배경을 깔고, 문화를 키워드로 하는 저자의 분석은 매우 독창적이고 설득력 있다. 그리고 market share가 아닌 mind share라는 개념도 신선했다.

 

저자는 문화 전략의 갈래를 다음과 같은 6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념적 대결 구도를 유발시키다 (벤앤제리, 퓨즈)

기업을 신화화 하다 (잭다니엘스, ESPN)

반동적 이념을 부활시키다 (잭다니엘스, 말보로)

문화자본 트리클다운 (스타벅스, 비타민워터, 팻타이어)

문화적 캐즘을 건너다(나이키, 스타벅스, 팻타이어)

문화적 주짓수 (벤앤제리, 퓨즈)

 

늘 제품 혁신을 고민하지만, 혁신 제품으로도 성공 여부를 장담하기 힘든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들이 제안하는 문화를 통한 새로운 브랜드 구축 전략은 매우 통찰력 있는 관점을 제공한다.


<<책의 내용 중 벤엔제리의 사례를 요약 소개한다.>>

- 벤엔 제리는 현재 유니레버에 인수되어 유니레버 안에서 2, 3위 브랜드가 되었다.

 

미국 고급 아이스크림 업계의 강자 벤 앤 제리의 사례는 책 속에 소개된 다른 사례에 비해서도 매우 독특하다..

벤과 제리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미국에서 유행했던대항문화의 보헤미안적인 이상을 토대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막차로 아이스크림 업계에 들어왔다. 게다가 1970년대 초반부터 많은 사람들이 보헤미안의 이상을 표방하며 시작했던 비즈니스는 거의 대부분이 파산했다. 소규모로 성공한 이들도 간혹 있었지만, 주목할 만큼 크게 성공한 비즈니스는 없었다. 그런데 벤 앤 제리는 그런 하위문화의 틀을 깨고 나와, 최고의 고급 아이스크림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초창기 벤 앤 제리는 버몬트 주 벌링턴과 인근 지역의 친환경 농산물 생산자들을 목표 소비자층으로 삼아 크게 성공했다. 벤 코헨과 제리 그린필드는 히피들이 시골에 둥지를 틀고 공동체를 만들어 귀농 이념이 싹텄던 1969, 롱아일랜드의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 중 벤은 대학에 진학했지만 도예를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어 중퇴한 다음, 얼마 지나지 않아 뉴욕 주 외곽의 하이랜드 공동체라는 실험학교에 공예 교사로 취직했다.

하이랜드 공동체는 전형적인 농촌 공동체로 교직원과 학생들이 먹거리를 직접 재배하고 농장에서 기른 소에서 우유를 얻었다. 3년 후 건축법 위반으로 공동체가 문을 닫자 벤은 당시 실업자였던 친구 제리를 불러 아이스크림 가게를 시작했다


그들은 상당한 규모의 대항문화 공동체가 있는 지방 대학도시들 중에서 버몬트 주 벌링턴을 선택했다. 그들은 12천 달러를 어렵게 마련하여 버려진 주유소를 빌려 아이스크림 가게를 시작했다.

가공되지 않은 간단하고 신선한 자연 식재료만 사용해 아이스크림을 만들었다. 그들은 볶은 곡물과 손으로 직접 부순 땅콩캬라멜 그리고 버몬트지역에서 생산되는 메이플 시럽같은 재료로 아이스크림의 향을 냈다. ‘벤 앤 제리 홈메이드라는 상호는 작고 친밀하고 전근대적인 느낌이었는데 꽤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저자들은 벤 앤 제리가 자사의 브랜드와 귀농운동을 이념적으로 일치시키고, 산업화된 거대 기업영농에 대한 반대세력으로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매우 광범위한 문화코드를 사용했다고 평가한다.


벤 앤 제리가 15주년이 되어 사업을 확대할 때 벤은 가장 강력한 마케팅 도구를 이념에서 찾았다. 벤 앤 제리를 레이거니즘의 비즈니스 이념과 정치에 대항하는 믿을 수 있는 도전자로 포지셔닝하자는 것이었다. 브랜딩 목표는 정해졌으니 이제는 그 방법을 결정해야 했다벤 앤 제리가 나아갈 길을 알려주는 첫 번째 길잡이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왔다. 1984년 벤앤제리는 자금이 필요했는데 귀농운동의 이상을 반영하여 지역의 농부와 그들의 가족 그리고 공동체 회원들에게 주식을 공개했다. 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최소 투자액을 125달러로 책정했다. 1800 가구가 벤 앤 제리의 주식을 매입했는데, 버몬트 주 전체 주민 100명당 한 명꼴로 벤앤제리의 주식을 매입한 셈이다. 이처럼 금융가의 상식을 뛰어넘는 창조적인 주식공개로 월가를 단숨에 전복시키자, 벤앤 제리는 버몬트 주를 비롯하여 인근 여러 주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두 번째는 찐빵인형은 무엇이 두려운 걸까?” 켐페인이었다.

19843월 벤은 하겐다즈의 모기업인 필스버리 컴퍼니가 식품 소매상들에게, 만일 벤 앤 제리 아이스크림을 계속 판매한다면 거래를 끊겠다고 협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하겐다즈의 아이스크림 시장 점유율이 70퍼센트가 넘었기 때문에 소매점들도 굴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법적 투쟁은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데다, 소송에 소요되는 막대한 시간과 돈을 감당하기도 힘들었다.

이 문제에 대해 벤은 필스버리는 레이거니즘의 비즈니스 화신이자 약탈자이고, 벤엔제리는 귀농운동의 원칙에 입각한 대안적 중소기업이란 대결 구도에 불을 붙일 수 있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 수단으로 찐빵인형은 대체 무엇이 두려운 걸까요?”라는 캠페인이 탄생했다. 이것은 필스버리의 유명한 마스코트, ‘도우보이Doughboy’를 비꼬는 말이었다. 벤 앤 제리는 그 캠페인 문구를 언론홍보자료로 대대적으로 배포했고, “3,948,100,100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찐빵인형과 맞붙은 작은 벤앤제리를 알리는 유인물을 제작했다. 유인물 뒷면에는 개개인의 직접 행동강령을 포함시켰다. ‘연방통상위원회와 필스버리 이사회 회장에게 보내는 항의 편지 보내기, 버거킹 등 필스버리의 다양한 하위브랜드에 대한 불매운동을 촉구하는 등의 행동지침이었다. 그리고 찐빵인형 핫라인을 열어 소비자들과 소통했다.

벤 앤 제리는 찐빵인형캠페인을 통해 귀농운동의 인도적 이상으로 레이거니즘에 대항하는 유쾌한 히피 약자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이 캠페인에 힘입어 벤 앤 제리 아이스크림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해서, 1985년 매출이 250퍼센트나 성장했다. 이듬해인 1986년에도 매출이 두 배나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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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팟캐스트 '어쩌다 책 읽기'

2012.10.04 10:20

내용 있는 좋은 책을 소개하면서도

재미있고 부담없이 들을 수 있는 팟캐스트가 있다.

제목은 "어쩌다 책읽기"


- 알라딘 US 사장이 한윤경씨와 진행한다.

- 조선역사, 자기계발, 한국 소설 등 매주 분야를 돌아가며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 책을 소개한다.

- 매주 1권을 선정해서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 천명관, 알랭드보통, 이덕일 등 교양 수준에서 의미있는 독서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책을 고르는 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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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생존 조건

출판 이야기 2012.09.27 12:26

출판업이 어렵다고 하지만, 출판업만이 아니라 내수를 기반으로 하는 사업 치고 어렵지 않은 것이 없을 듯 하다.


일본, 미국, 유럽 등 어느 나라를 봐도 40대 인구가 정점을 이루는 시기에 경제는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집값이 오르고, 주식시장이 오르고, 소비도 활발하다. 그 후 이민이나 수출을 통한 새로운 시장 개척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거의 예외없이 장기적인 저성장 국면에 빠진다.


우리나라는 53년에서 63년 사이에 태어난 720만 명 정도의 베이비 붐 세대가 이미 모두 50대로 접어들었고, 본격적인 은퇴를 시작하면서 경제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러니 출판을 비롯한 내수 업종은 무조건 어렵다고 보면 될 듯하다. 출판은 이런 인구 쇼크에 스마트 기기를 중심으로 한 미디어 변화까지 겹쳤으니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결심한다.

단순 무식하게 전망하면 향후 5년간 출판업은 규모가 반까지 줄어들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면 살아남는 반에 끼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 이것이 모든 생각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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