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나름 선진적인(?) 한국의 은행들

1997년 IMF 외환위기와 관련해서 알려지지 않은 속사정이 한가지 있다. 당시 우리나라는 경상수지가 외환위기 전부터 적자 상태였기 때문에 달러가 계속 유출되고 있었다. 다행히 세계경제가 호황기여서 -달러 환율도 낮았고, 이자도 별로 높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나라 기업과 금융기관은 부족한 달러를 외국에서 빌려왔다. 실제로 당시 기업의 재무제표를 보면 달러 부채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당시 외환위기 직전까지 우리나라 은행들은 달러를 빌리기 위해서 달러 표기 채권을 많이 발행하였다. 이러한 채권의 주요 구매자들은 해외 투자은행들이었는데, 그들은 혹시라도 한국의 은행들이 빌린 돈을 갚지 못할 가능성에 대비하고 싶어했다. 그들에게 구원의 천사가 되어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한국의 은행들이었다. 그들이 미심쩍어 하는 한국 은행들의 신용 리스크를 제거할 있는 보험을 곳이 바로 한국의 다른 은행들이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게 과정이 진행되었다.

 

1) A은행이 이자율 5% 발행한 달러표기 채권을 메릴린치가 구입한다.

2) 메릴린치는 B은행에게 채권의 이자율 5% 중에서 1% 떼어주는 조건으로 채권의 신용 리스크에 대한 보장 보험을 산다.

3) B은행은 앉아서 편안하게 1% 번다.

 

당시 한국의 은행들은 은행의 파산이란 외계인의 침공만큼이나 가능성이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니 보험 팔아서 버는 1% 수익은 그들에게는 공짜점심, 무위험 수익이나 다름없었다. 100만원의 1% 이자(1만원)라면 볼일 없겠지만, 1000억원의 1% 10억원으로 얘기가 달라진다. 공짜점심의 맛을 알게 된 우리나라 은행들은 너도나도 이 보험을 팔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느 시점에 가서는 A은행이 발행한 채권을 보증해주는 보험을 B은행이 팔고, B은행이 발행한 채권에 대한 보험을 A은행이 파는 식으로 빚쟁이들끼리 서로 서로 지급 보증을 서주는 돌려 막기 구조가 형성되었다. 그러니 하나가 죽으면 전체가 죽는 리스크를 자신도 모르게 짊어지게 것이다. 당시에 얼마나 보험을 많이 팔았으면 보험을 팔아 들어오는 수익이 은행의 주요 수입원 하나였다고 한다.

동남아의 외환위기는 이렇게 은행들이 안고 있던 달러 채권 보험이란 폭탄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다. 미국에서 2008년까지 서브프라임모기지 채권을 가지고 투자은행들이 파생상품을 만들고, 파생상품의 리스크에 대한 보험을 대량으로 팔았다가 망한 AIG 일이 바로 이런 종류의 일이었다.

그러니 우리나라 금융업이 제조업만큼 선진화 되어 있지 못하다고 지적 받고 있지만 당시의 은행 관계자들이 들으면 서운해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보험 폭탄에서만큼은 2008년에 미국에서 AIG보다 15년이나 앞서서 우리 은행들이 선진적으로 경험했으니 말이다. 달콤한 공짜 점심과 뒤의 배탈까지도.



** 곧 나올 임성준, 조셉 H. 리, 두 분의 <소수의 법칙:월가에서 온 두 젊은이의 금융이야기>의 원고에서 발췌, 가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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