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부의 용맹과 지도자의 용맹

항왕이 성내어 고함을 지를 때면 천 사람이 다 놀라 엎드립니다. 그러나 어진 장수를 믿고 병권을 맡기지 못하니 이는 필부의 용맹일 따름입니다. 항왕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공경하고 자상하며 말씨도 친절하고 부드럽습니다. 누군가 병에 걸리면 눈물을 흘리며 음식을 나누어줍니다. 그러나 부하가 공을 세워 마땅히 작위나 식읍을 내려야 할 때에 이르면 인장이 닳아질 때까지 만지작거리며 차마 내주지 못합니다. 이는 이른바 ‘부인지인婦人之仁’일 뿐입니다. 항왕은 비록 천하의 패자가 되어 제후들을 신하로 삼았지만 관중에 있지 않고 팽성에 도읍했습니다. 또한 의제와의 약조를 저버리고 자신의 측근과 좋아하는 사람을 왕으로 삼았기 때문에 제후들이 불평합니다. 제후들은 항왕이 의제를 옮겨 강남으로 쫓아 보내는 것을 보고 모두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원래의 임금을 쫓아내고 스스로 좋은 땅의 왕이 되었습니다. 항왕의 군대가 지나는 곳마다 학살과 파괴가 따랐기 때문에 천하의 백성들은 그를 원망하고 친밀하게 따르지 않습니다. 다만 그 위세에 눌리고 있을 뿐입니다. 비록 패왕으로 불리지만 사실은 천하의 인심을 잃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강대함을 약화시키기 쉽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사기 회음후열전(<한초삼걸>에서 재인용, 한신이 유방에게 계책을 간하는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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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초삼걸 - 천하최강의 참모진

출판 이야기 2011.04.29 16:22

2년전쯤 사회적으로 Followership에 대한 얘기가 무성했다.

특히 어떤 집단, 조직에 문제가 생기면 리더십, 리더의 자질과 능력을 문제삼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리더만의 문제겠냐? 리더도 인간인지라 그를 보좌하는 참모들의 역량에 따라서

많이 달라질 수 있지 않느냐는 얘기였다.

한 마디로 "문제있는 리더가 바뀌면 문제가 해결되겠냐"는 문제의식이었다.


이 얘기를 듣고 이제 우리도 참모학, followership을 얘기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미국의 followership 책 중에서 찾아보았다.

경영서 중 특히 무의식에까지 자리잡은 문화적 특성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것이 리더십 영역이었다.

내용이 잘 정리된 것은 많았지만 그렇게 역할과 책임을 칼같이 나누고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미국과 우리는

다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중국 쪽의 참모학을 찾기로 했다.


참모 하면 역시 장량, 소하, 한신이 아니겠는가? 제갈량 등도 있지만, 천하의 날건달 유방을 대륙의 황제로

만든 이들이며, 각각의 개성과 능력을 가지고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낸 세 사람이 당연히 일순위로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해서 찾던 중 중국 고문헌학과 사기에 정통한 저자 두 사람이 남경대학에서 낸 이 책의 원서를

역자 장성철님의 도움으로 찾게 되었다.


이 책을 보며 유방과 항우 중심이 아니라 장량, 소하, 한신을 주전으로 삼고 유방과 장량을 부전으로 삼은

독특한 책의 관점이 눈에 확 들어왔다. 게다가 이야기 읽듯 쉽게 읽히면서도 고증을 충실히 한 서술.


한 가지 아쉽다면 고증에 충실하다 보니 사기의 "oo편" 대목을 인용하고 그 얘기를 조목조목 다시 비평하거나

저자의 관점에서 해설하는 체계여서 읽는 호흡이 느리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좋을 수도 있겠다.) 이 점을 정리해서 간결하게 다듬을까 고민하다가

고증에 충실한 면을 살리기로 했다. 대개의 사기 관련 대중서가 정사와 야사의 구분이 애매해서 혼란스러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장량은 유방의 벗이자 스승으로서 초한전쟁의 전략을 세우고, 한신은 탁월한 군사능력을 발휘해

전략을 실행하며, 소하는 후방을 안정시키며 전략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세 사람을 유방은 이렇게 평했다.

장막 안에서 작전을 짜서 천 리 밖 승부를 결정짓는 걸로 말하자면 나는 자방(子房)을 따르지 못하오.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들을 다독이며 양식을 공급하고 운송로가 끊어지지 않게 하는 일이라면 나는 소하를 따르지 못하오. 백만 대군을 이끌고 싸우면 반드시 승리하고 공격하면 기어코 빼앗아 취하는 일에서는 내가 한신을 따를 수 없소.” (史記·高帝記)

유방과 한초삼걸의 흥기에서 시작해 마침내 해하(垓下) 결전에서 항우를 무너뜨리고 천하를 제패하기까지 세 사람의 활약상 못지 않게 세 사람의 서로 다른 처세와 운명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 장량은 유방을 섬기며 또한 벗의 관계를 유지했다. 이는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장량은 공을 이룬 다음에는 유유자적 은거하며 이름을 길이 남겼다.

* 소하는 전장에 나가 있는 유방을 대신해 후방을 책임지면서 유방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조심했다. 아들을 인질로 유방 곁의 군사로 보내고 늘 조심스럽게 유방의 밑에 있음을 증명해야 했다. 그는 명재상으로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

* 탁월한 군사 재능으로 유방의 명성을 능가한 한신은 스스로 제나라 임금을 청하는 등 유방의 권위를 침범하여 늘 견제를 받아야 했다. 결국 그는 반역의 길로 내몰려 삼족이 멸하는 비운의 영웅으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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